저는 남들처럼 평번한 가정을 꾸일 수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무정자증이라는 것을 알았을때, 이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이였습니다.

저희 부부는 끊이없이 의논하고 AID도 20번 넘게 했었습니다.

마침내 저희 부부는 대만에서 현미경하 임공수정( 이하:현미수정 )을 통해 임신에 성공했습니다.

그것도 한 번만에요.

 

부인A씨에게는 B씨가 무정자증이 있다는 것을 알기전까지는 임신과 출산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 B씨는 무정자증이였고 부부는 굉장히 오랫 시잔동안 임신을 갈망했다.

그리고 부부는 AID를 하기로 결심하고, 일본에서 수차례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A씨가 28살일때, A씨는 자신보다 7살 더 많은B씨에게 시집을 갔다. 당시 부부는A씨가 30살일때 출산을 하려고 계획했었다.

A씨”그때는 제 배란기에 맞춰 서로 준비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저희는 2년동안 아이를 갖는 것에 실패했어요.

그래서 집 근처에 있는 산부인과와 불임병원을 찾아갔었습니다.” 부부는 기본적인 검사는 하고 남편B씨가 무정자증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부인A씨”저희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불임이 저때문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남편B씨”문제는 제게 있었다는 것이죠.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아내에게 굉장히 미안했었습니다.”

불임의 원인은 남편에게 있었지만 부인A씨는 남편B씨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부부는 서로 상의를 하고 남성불임병원을 방문했다. 남편B씨는 무정자증이 확실했다.

이에대한 유일한 방법은 TESE시술이였다. 만약 고환 안에 정자가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이를 체취하는 것이다.

남편B씨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안고TESE시술을 했지만 정자는 나오지 않았다.

부부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비록 남편이 무정자증이였지만 아이를 포기할 수 없었다

이때 부부가 할 수 있는 일은 4가지가 있었다. 첫째, 아이를 포기한다. 둘째, 아이를 입양한다. 셋째, 부인이 비배우자와의 임공수정을 하는 것이다.

넷째, 친척과의 인공수정이다. 부부는 아이가 없는 결혼생활을 상상할 수 없기에 첫번째 선택은 제외했다.

남편B씨”선택지는 입양 후은 AID였습니다. 처음에는 입양을 생각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내의 몸에 다른 사람의 정자가 들어가는 것이 굉장히 불편했었습니다.”

어쨌든 저희는 입양이든 AID든 수단을 막론하고 어느 방법이 아이에게 좋은지 오랜시간동안 상의했습니다.

저희는 매일 토론을 했지만 사실 싸우는 것과 같았습니다. 각자의 생각이 매번 달랐거든요.

저희는 관련 정보가 굉장히 부족함을 느끼고 매주말마다 입양협회나 AID를 통해 아이를 낳은 사람들의 강연에 참가했습니다.

저희는 그들의 강연을 들었을 뿐 아니라 서적 및 인터넷 블로그 자료도 찾아봤습니다. 마침내 저희는 AID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만약 입양을 하면 부모가 됩니다. 하지만 저희는 부모로서의 각오를 천천히 갖고 싶었습니다.

게다가 제 아내는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건강한 신체를 갖고 있습니다. 아내에게 아이를 갖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습니다.

사실 부인A씨가 남편B씨보다 먼저 AID를 하고 싶었다.

부인A씨”저는 임신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해서 커졌지만 말 할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남편은 자기가 무정자증임을 책망하고 있었거든요.

제가 말을 꺼냈더라면 남편은 반대할 수 없었어요. 만약 남편이 아이가 태어난 후에 인공수정을 택한 것에 대해 후회하면 어떡해요.

그래서 저는 남편이 먼저 결정하기를 기다렸어요.”

부부는 AID를 하기로 결정하고 친척의 정자를 받을지 비배우자의 정자를 받을지 의논했다.

남편B씨”만약 친척의 정자를 받으면 가족관계가 복잡해질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저희는 비배우자의 정자를 받기로 정했습니다.”

 

AID치료의 초진 예약 마저도 어려운 상황

AID치료는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부부는 C병원에 AID를 예약했지만 당시에 대기자가 워낙 많아 최소 7개월을 기다려야했다.

7개월을 기다린 끝에 치료를 해도 성공을 하지 못할시 언제 다시 치료를 할지 불분명했다. 즉 치료의 효율이 낮았다.

그래서 부부는 H병원에도 진료예약을 했다. 단 H병원은 8개월 후에야 초진을 받을 수 있었다. 이후 부부는 C병원에서 첫번째 AID를 하고 4개월 후에 다시 시도했다.

두 치료 모두 실패였다.그렇게 몇달이 지난 후 H병원에 진료를 하러 갔다. 그런데 H병원은 매달 AID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부부는 C병원의 치료를 표기하고 H병원 치료에 집중했다.

 

대만에서 비배우자와의 인공수정. 첫번째 시도만에 성공!

AID 치료를 시작한 뒤 1년에 10번, 총 2년 만에 20번을 더 했다.

A씨는 “처음 치료를 시작할 때는 생리 때마다 울었지만 서서히 불임치료가 삶의 일부가 됐어요.

다만 치료 횟수가 10건 이상일 때 이대로는 성공하지 못할 것 같아 인터넷에서 다른 방법을 찾아봤었죠.”

찾아보는 과정에서 홍지클리닉을 찾았다. 일본의 인공수정을 하는 비배우자에 한해서 임신할 확률이 3%쯤에 불과했다.

대만의 경우 현미수정이 가능하고 임신할 확률이 50,60%에 이른다. A 씨는 일본에서 열린 홍지클리닉의 설명회를 참석하여서 원장님의 스타일에 만족하여서 대만 치료를 결심하였다.

“일본인 통역도 있고, 대만에 가기 전 피드백 속도도 되게 빨라서 우리가 궁금해하는 문제들을 되게 세심하게 답변을 잘 해주셔서 그래서 우리가 스스로 준비 해야 되는 문제에 있어서도 별로 어렵지 않았어요.

A씨는 총 세 번을 대만에 와서 초진, 난자채취, 이식하였다.

진찰 할 때나 채취할 때나, 이식할 때 다 통역사가 동행해서, A씨에게 원장에게 수시로 질문을 할 수 있어서  안심이 되었어요.

A씨 “첫 현미 수정 임신이라서 나는 매우 놀랐었어요, 이식 후 9일째 되는 날, 혼자 일반 임신 테스트기를 사서 검사를 해봤는데,

인생 처음으로 두 줄이 있는 거를 봤어요. 3일 후에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정식으로 임신을 확인했습니다. 너무 기쁘지만 유산할까 봐 두려웠기도 했죠.”라고 말했다.

나중에 임신상태가 안정되고 태동도 느껴져서 A씨는 마침내 안도하게 되었다.

기자의 눈앞의 A양은 현재 임신 8개월이다.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는 배는 천천히 부모로서의 준비를 하게 하는 것 같다.

현재 부부는 아이의 이름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토론하고 있다.

B씨남편은 “우리는 아이가 1, 2살 때 알려주려고 해요.그리고 한 사람이 도와주니까 너가 이런 아들로 태어났구나라고 말이죠.”

기자는 부부 두 사람의 생각이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그들도 한 때는 말다툼을 많이 했다고 들었는데, 이제는 부부가 서로를 배려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A씨는 “만약 우리 남편이 무정자증이 아니라면 우리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이렇게 아이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지 않았을 거에요”라고 말했다.

B씨남편은 “내 아내가 잘못한 것은 없어요. 우리는 이런 때 우리 부모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는 어린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계속 논의해왔고,

일종의 습관으로 변했어요.’라고 말하였고, 그리고 부부는 함께 이번 불임치료로써 우리 부부 사이가 더 좋아지고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

B씨는 “나처럼 무정자증인 남자가 많아지고 있다고 들었다. 만약 여러분이 임신이 어려울 것 같다면, 부인 외에 남편도 같이 검사를 받으러 가실 것을 권해요.

만약 무정자증으로 판명되었다면, 계속 고민하지 말고 빨리 치료를 시작하세요. 나는 고민하는 시간이 낭비라고 생각해요.

나는 지금 생각하기에 그 때 빨리 행동을 취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그것이 내가 유일하게 후회하는 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