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코다카라 네트의 원장님 인터뷰 한국어 번역입니다.
본원에서 난자를 제공한 제공자의 인터뷰도 있으니 확인해 보세요^^♪
원본  http://www.kodakara.jp/funin_chiryo/abroad/hospital/48_003/#pagetop

홍지ART클리닉 난자제공 PGS센터 ー 원장 장홍지


인터뷰

괜찮습니다! 엄마가 되는 꿈、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일본에서는 「정자・난자・배아의 제공에의한 생식보조의료」가 법적으로 정해져있지않고,

소수 일부분의 의료기관을 제외하고는, 일본산부인과학회의 공고에 따른 자주적인 제도를 진행하고있습니다.

어쩔수없이 국외에서의 난자제공을 선택하는 부부도 있습니다.

『宏孕(홍지)ART 클리닉』(대만・타이페이)의 홈페이지에도「해외의 불임치료전문 클리닉중에서

일본에서 내원하는 환자가 많은 클리닉」이라고 안내하고있습니다.

왜 대만인지, 왜 홍지클리닉인지를 원장인 장홍지 선생님에게 여쭤보았습니다.

미국에서 7년간 열심히 기술을 갈고닦은 스페셜리스트로,

뉴욕과 같은 수준의 의료기술로 치료해드릴것을 약속합니다.

타이페이시내에 있는 타이페이 송산공항에서 택시로 10~15분만에 갈수있는

좋은 위치의 『홍지ART 클리닉』. 대만타오위엔 공항에서도 택시로 40~50분이면 도착이 가능합니다.

대기실은 모던한 인테리어로 고급스러운 붉은색의 소파가 클리닉의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창문으로 타이페이의 상징인 고층건물 『타이페이101』를 볼수 있습니다.

진찰실에 들어가 장홍지 선생님으로부터 건네받은 명함에는 일본어로

「ちょう こうきち초오코우키치」라고 선생님의 이름이 적혀있었습니다.

매우 친밀감이 느껴졌고 편한 마음으로 바로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바다건너 다른나라의 병원까지와서 매우 긴장할 일본환자분들도,

이 명함을 보면 마음이 조금 편해질거라고 생각합니다.

대만인 장선생님의 성함이 「宏吉」로 중국어로 읽으면 「홍지」。「吉」의글자는 「지」라고 발음하는데,

「孕」(아이를 품고있다는 의미의 「임신하다」)을 바꿔서 사용한것이 클리닉 이름의 유래라고 합니다.

클리닉의 로고인 민들레 솜털은 「희망의 씨앗이 흩날려  힘들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것」

을 임무라 생각하고 클리닉의 이상을 표현한 것입니다.

「『홍지ART클리닉』이 일본인 부부에게 선택된 것은, 난자제공이라는 중대한 결정이 필요한 국면에서,

일본인 스텝이 있어 상세한 부분까지 정확한 설명이 가능하고, 환자분들이 안심하고 치료를 받을수 있다는 점과,

역시 무엇보다 높은 의료수준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본원에서 약 300여명의 환자분들이 난자제공을 수령했지만,

70%이상 200여명이상은 모두 일본인입니다.

사실 저는 대만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생식의료를 공부하러 미국으로 건너가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뉴욕대학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공부만하는 연구생이었습니다.

제가 미국으로 건너가기전까지 2년간 진전이 없던 중대한 연구의 결과를 제가 1개월만에 성공시켰습니다.

그 연구실적이 인정되어 학교에 고용되었고, 그린카드(미국 영주권)도 취득했습니다.

하지만 나이든 아버지의 간호가 필요해 대만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 나라에서 뉴욕과 같은 레벨의 생식보조의료가 제공되는 클리닉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

2012년 타이페이에『홍지ART클리닉』을 개원했습니다.

미국전역에서 난자제공에 의한 출생률은 40.5%,

그중에서도 수준이 높다고 평가받고 있는 뉴욕대학(미국전역 랭킹 4위)의 수치는 44.5%의 상황,

본원의 출생률은 61,68%입니다. 본원이 이렇게 높은 성적을 올릴수 있었던 것은

제공자의 평균연령이 25세전후라서 젊고, 건강하기 때문입니다.

1명의 제공자로부터 채취한 난자는 모두 수령자가 사용할수 있고,

이식의 기회가 미국보다 많지만, 무엇보다도 배양연구실의 설비와 환경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것은

물론, 저 자신이 개원한 이래 생식의료와 불임증의 스폐셜리스트로써

일체 타협을 하지않고 확실이 치료하기 때문이라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습니다.

제가 너무 엄격했는지, 스텝들이 저에게 “선생님 여기는 대만이라서 그렇게까지 엄격하게 않해도 됩니다…”

라고 불만을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보람으로 현재 본원을 뒷받침하고 있는

스텝들은 뉴욕의 치료시설에서도 지지않는 실력을 갖춘 인재들입니다.

또한 배아에 관해 자세히 알고있는 의사는 드물지만,

저는 뉴욕대학에서 연구원으로 7년의 경험이 있으므로,

배아를 수정시키고 동결시키고 해동시키는 부분은 프로수준의 대응이 가능합니다.

원래 배양연구실에 우수한 연구원들이 있지만, 뉴욕대학교 스타일의 연구법에 능한

제가 직접 지도하고 있다는 것이 다른 병원에서는 없는 『홍지ART클리닉』의 강점이라고 말씀드릴수 있습니다.」

『홍지ART클리닉』의 치료 퀄리티에도 놀랐지만, 장선생님의 연구원 실적도 매우 경이로웠습니다.

세계 TOP레벨이라고 불리는 미국생식의학학회(ASRM)에서 12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강연도 6년 연속으로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홍지ART클리닉』에서 제공되는 높은 의료수준과 대응력이 기대되고 있습니다.

 

대만의 난자제공은 국가가 운영. 클리닉과 환자가 직접 연결되므로 안심.

근래 몇년간 일본인이 난자제공을 목적으로 방문하는 나라로는 대만이외에 태국과 미국이 있습니다.

대만에 방문하는 환자가 특히 증가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지금 난자제공을 희망하는 많은 일본인 부부가 대만으로 방문하는것은

제공자가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이미 2007년 입법화되어 국가가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 안심이 되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태국도 입법화 되어있지만 개인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의료수준은 매우 높지만, 입법화되어있고 않고 개인이 운영해 비용이 매우 높습니다.

난자제공이 국가가 운영해 실시되고 있는곳은 대만뿐입니다.

게다가 국가와 에이전트(중간에서 연결해주는 회사)를 거치지않고

바로 클리닉과 환자가 연결되어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특히 『홍지ART클리닉』에는 일본어 통역스텝이 5명있어,

그중 일본인이4명(나머지 1명은 일본어가 능한 한국인)이므로,

중대한 결정을 위한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게 알수 있습니다.

부부의 마음까지 자세히 살펴, 의사소통도 편히 할수 있습니다.

다른나라에서 난자제공을 수령하는것이 매우 신경이 쓰이고 불안감을 크게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응대하는 스텝이 일본인이라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크게 줄어들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미국의 경우, 1회 치료비가 500만엔 이상이 드는것이 보통이고, 태국에서도 200~300만엔 정도이기때문에,

대만에서의 비용은  지금까지 몇번이고 생식치료에 도전해 치료비용에

많이 투자한 부부들에게는 부담이 많이 되지않다고 생각하는것 같습니다.

제공자는 지금 어느정도 등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본 클리닉에는 200여명의 제공자가 등록되어있어,

초진일 본원에 내원하시면 8~10명의 제공자 후보에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수가 매우 적지만 일본인 제공자도 있습니다.

대만은 법적으로 제공자가 될수 있는 조건으로는

20~40세미만이지만 본원의 제공자들은 32세까지만 등록하고 있습니다.

매일 여러명의 난자제공 희망자가 등록하러 내원하고 있고,

매월1회 본원에서 난자제공 희망자를 위한 등록설명회를 열어 매번 20,30명정도 참가하고 있습니다.

제공자는 감염증과 염색체 검사, 유전질환과 성병의 유무, 건강상태 체크 등, 난소의 기능을 알기위해

AMH(항뮐러관 호르몬)를 포함한 호르몬 검사를 합니다.

AMH수치로부터 배란유발제의 난포의 반응성을 추측할수 있으므로

저희 본원에서는 AMH가 2ng/ml이상이 아닌분들은 난자의 수가 충분하지않고 많은 난자를 채취할수 있는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해 등록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은 제공자를 선택하는것이 가능하지만, 처음 개원할때는 제공자를 모집하는 부분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영화관에 난자제공자를 모집하는 전단지를 놓기위해 매일 갔었습니다.

어느날, 드디어 난자제공 희망자가 1명 병원에 내원했습니다. 전단지를 보고 오신거냐고 물으니,

“아니요, 저는 영화관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선생님이 너무 열심히 영화관을 다니셔서 안되보여서 오게 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후엔 본원이 제공자들에게 부담가지않게 친절하게 한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점점 등록자가 많아졌습니다. 첫번째 등록자가 매우 고맙게 여겨졌습니다. 」

 


더이상 힘들어하지 마세요! 직장도, 엄마가 되는 꿈도 포기하지않아도 됩니다.

「2014년 2월, 본원에서 난자제공을 받은 일본인 환자분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일본인 수령자(제공을 받는 환자분) 제1호입니다. 그 이후 일본에서 ART치료로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도 길이 보이지 않았던 분들이 점점 본원에서 난자제공을 받아, 별탈없이 순산하게 되었습니다.

10여년간 불임치료를 해왔던 분, 체외수정을 30,40회 반복했던 분, 최고는 72회 치료한 분도 있었고,

조기폐경(POI)이 된 분, 50세 전후 등등 모두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친 상태로 진찰실에 들어옵니다.

일본에서 온 환자들은 대부분은 이렇게 계속되는 치료를 위해 어쩔수 없이 일을

그만둬야하는 상황이 되어 마음이 좋지않은 상태로 내원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어렸을때부터 꿈이었던 일과 사는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일도 잃게되고 슬픔에 잠긴 사람들뿐이었습니다.

직장은 그만두지 않고 계속 근무하는게 좋습니다. 일본에서 난자제공이라고하는

선택지는 매우 간단히 결정할수 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ART를 반복하는것 이외에는 다른 수단이 없다고

하지만, 30회 치료를 반복한 환자에게 “다음 주기에도 한번 더 해보세요” 라고 계속 말할수 있나요?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할수 있나요? 담당의사도  환자에게 편하게 얘기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환자들에게 “당신은 꼭 엄마가 될수 있습니다!”라고 전하면 모두 놀라면서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어떤 환자분중, 10대에 암에 걸려 항암치료로 인해 난소기능이 안좋아진 여성분이 있었습니다.

남자친구에게 아이를 낳을수 없다고 말했지만, 그 남성분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같이 있는것만으로도 힘이 된다고 생각해 결혼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 부부가 본원에 내원했을때 저는 그 여성분에게 물어봤습니다.

“당신은 본인이 불쌍하다고 생각합니까?” 이 질문에 그 여성분은

“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해 제가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의사인 제가 봤을때 당신은 전혀 불행한 사람이 아닙니다.

암투병을 이겨내고, 이렇게 당신을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남편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난자가 없는것 뿐입니다. 저는 당신에게 건강한 제공자의 난자를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그 난자와 남편의 정자를 수정시켜 수정란(배아)을 당신의 자궁에 이식할것입니다.

10개월의 임신기간동안 당신과 아이는 태반을 통해서

산소와 영양분, 그리고 서로의 DNA도 연결됩니다.

태어나는 아이는 당신의 DNA를 가진 아이입니다. 당신은 곧 엄마가 될것입니다”라고….

지금 본원에는 자궁은 있지만 난자가 없는

『터너 증후군』의 환자분도 몇차례 난자제공 치료를 받으며 임신을 향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절실한 마음으로 오시는 분들을 위해 저희는 환자분들에게 열심히 치료해드리고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일본의 주요 도시에서 수령자를 위한 난자제공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으므로

저와 일본스텝들과 직접 얘기를 하고싶은 분은 꼭 참석해 주세요. 또한 일본인 제공자도 모집중입니다.

타이페이까지 비행기로 3시간입니다. 인생을 바꾸기위해 한발짝 앞으로 걸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장선생님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전에 방문한『홍지ART클리닉』의 제공자 1호가 된

영화관의 직원분도 장선생님의 열의에 마음이 움직인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긴 불임치료를 통해「역시 난자제공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부부는

『홍지ART클리닉』의 문을 열어보세요.

확실한 자신감과 열정이 있는 장선생님과 정성을 다해

응대하는 스텝들이 부부에게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 줄거라고 생각합니다.

<『홍지ART클리닉』제공자와의 인터뷰>


제가 난자제공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 불임치료를 받고있는 동료의 마음을 알기때문에..

이날은 난자제공 경험자인 A씨(26세)가 취재에 응하기위해 내원해 저희들을 기다려주셨습니다.

속눈썹 연장술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A씨는 크고 맑은 눈은 가지고 있고,

스타일이 매우 좋은 아름다운 분이었습니다.

대만은 법적으로 난자제공을 수령하는 부부가 알수있는 제공자의 정보는

제공자의 혈액형과 피부색, 민족(대만인인지, 일본인인지 등등) 의 세가지뿐.

2016년 가을 제공자로써 『홍지ART클리닉』에서 난자제공을 했다는 A씨.

그 결과, 임신이 되었는지 어떻게 되었는지 아직 듣지 못했다고 얘기합니다.

「출산하는 때가 오면, 제가 제공한 난자로, 부부가 별탈없이 건강한 아이가 태어났는지 어떤지 듣고싶습니다.

난자를 제공한 제공자가 유일하게 알수 있는것은 결과뿐입니다.

어떤 부부에게 제공이 되었는지는 평생 알수 없습니다. 물론 신경이 쓰이기도 하지만,

건강하게 태어나 행복하게 잘 성장한다면 매우 기쁠거라고 생각해 제공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난자제공을 기다리는 부부가 있다는 것은 친척언니로부터 들었습니다.

친척언니는 당뇨병이 있어서 제공자가 될수 없으니, “ 니가 힘이 되어주는것은 어때?” 라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저의 예전 직장에서 체외수정 치료를 하는 동료가 있었기 때문에,

치료와 불임증의 고통이 어떤지 그 동료로부터 많이 들었었습니다.

그것을 몇십번이나 하고 있다는 부부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런 분들에게 도움이 되다면 난자제공을 해볼까라고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에게 물어보니, 남자친구는 아주 좋은 일이라며 응원까지 해주었습니다.

홍지 클리닉을 결정한 이유로는, 『홍지ART클리닉』의 스텝들은

저희 제공자에의 배려심이 매우 깊고 친절하다고 인터넷상으로 소문이 나있었기 때문입니다.

난소자극치료와 난자채취도 모두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불안함과 두려움이 매우 컸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설명해 주셨고, 치료중에 불편한 점이 있으면

바로 해결해 주셔서 이런 부분이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난자제공자에 등록하고 난자채취가 끝날때까지의 과정을 알려주세요.

「매칭심사를 기다리는 기간(수령자로부터 선택을 받기까지의 기간)은 3개월정도였고 설레며 기다렸습니다.

결정이 되었다고 연락을 받고 약2주간은 매일 난자를 키우기위한 주사를 맞았습니다.

21~23개의 난포가 자라났고,  복부가 매우 부풀어 올랐습니다.

앉아서 근무하는 직업이라 난자채취일이 다가오때쯤은 매우 힘들었습니다.

난자채취가 무서웠기 때문에 전신마취했습니다.

수술후 눈을 뜨니 모든게 끝나있어서 금방 끝난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난자채취후 몇일간 복부가 좀 부풀어 있는 느낌이 있었지만, 많은 난자가 채취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기뻤습니다.

제가 제공한 난자를 받은 부부가 건강한 아이를 출산해 부부의 꿈이 일루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저도 언젠가는 저의 꿈을 이룰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험해 보지 않은일으므로 불안함도 있었지만,

과감하게 선택해서 한 이일을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의 친구들에게도 이런 방법으로 누군가를 도와줄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시종일관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해준 A씨. 취재반을 맑은 눈으로 바라보는 그 눈빛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수있게 되었습니다」라고 하는 만족감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현재 일본에서 난자제공이 진행되고 있는 JISART와OD-NET등의 지원단체에서의 정해진 가이드 라인은

「제공자는 무상無償」、「아이는 자신의 출생에 관한 알권리를 인정」등의 조건이 있습니다.

대만에서는 「제공자는 유상有償」、「아이는 자신의 출생에 관한 알권리를 인정하지않음」을 조건으로 하고,

게다가 법적으로 제도화하고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한 생각과 제공자의 선택방법

(JISART는 자신의 자매나 지인등으로 부터 도움을 받아 찾아야함, OD-NET는 매칭 위원회에서 선택,

대만은 환자가 희망하는대로 병원에서 선택) 등에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점을 잘 숙지하고, 또한 숙고하는게 중요하지만,

원래 국내에서 난자제공 가이드라인에 적용이 안되는 환자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국외에서의 선택지는 일루의 희망이 될수 있습니다.